사랑을 만드는 무의식의 과학
인류 문화는 대체로 인간이라는 동물 종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인 욕망을 억제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구애 과정에서 긴장하게 되는 이유는, 본능이 마구 솟구칠 때 얌전하게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롭과 줄리아는 바로 그 시점에서 강력한 충동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열정적이고 앞서가는 말을 하게 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습니다.
구애에 성공하는 사람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멜로디와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서로를 알고 또 자기 욕망을 억제하는 상호과정을 통해서, 두 사람 사이에서는 동질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떻게 행동할지를 영원히 규정하게 될 암묵적인 규칙이 하나씩 형성이 됩니다.
두 사람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바로 이 상호과정을 통해서입니다.
"사랑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상대방의 손에서 전해지는 신체 접촉의 느낌입니다. "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이 한 말입니다.
장차 해럴드의 부모가 될 이 청춘 남녀도, 그 시점에서는 대화라기보다는 서로를 서로에게 길들이는 과정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롭과 줄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때 롭은 줄리아를 문으로 안내하는 척하면서 손을 그녀의 등에 자연스럽게 얹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이런 의도적인 신체 접촉을 그녀가 불쾌해 하지나 않을까 겁이 났습니다.
한편 줄리아는 그날 자기가 들고 온 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미니밴만큼이나 큰 가방이었습니다.
모터가 달린 자전거까지 담을 수 있을 정도로 컸습니다. 그날 아침에 그녀는 작은 가방을 들고 소개팅 자리에 나서면 자기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싶어서 일부러 큰 가방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식사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가방을 들고 나오다니..!
롭은 식당 문 밖으로 나온 뒤에 결국 줄리아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신뢰가 가득 담긴 미소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인도를 걸었습니다. 고급스런 문방구를 지나쳤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밀착한 채 연인이 함께하는 산책을 하고 있었지만, 둘은 이런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줄리아는 롭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정말로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내내 롭은 줄리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어쩐지 의지하고 싶고 의지가 되는 그 시선에 줄리아는 편안하게 이끌렸습니다.
한편 롭은 줄리아를 차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 때 정말로 몸을 덜덜 떨었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빨라졌습니다.
그는 식사를 하는 동안 자기가 평소와 다르게 재치를 발휘하였다고 느꼈습니다. 줄리아의 반짝이는 두 눈동자에 고무되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이 롭을 사로잡았습니다. 롭은 줄리아에게 대담하게 물었습니다.
내일도 만나면 좋겠는데 어떠냐고, 줄리아의 대답은? 당연히 '예스'였습니다. 롭은 그냥 악수만 나누고 작별하기는 싫었습니다. 그렇다고 키스를 하기에는 너무 빨랐습니다. 그래서 여자의 팔을 잡고 여자의 뺨에 자기 뺨을 댔습니다.
어정쩡한 자세라서 비록 완전한 포옹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자세로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페로몬을 은밀하게 느끼고 받아들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120분 동안 미묘한 사회적 과제를 수행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재치, 공손함, 감정이입, 예민한 감각, 순발력과 임기응변 등을 서로에게 과시하였습니다.
자기들 문화궈에서 통용되는 첫 데이트의 사회적 통념에 맞추어서 행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천 개나 되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상대방 및 자신이 보인 감정 반응을 아무리 정밀한 기계장치라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정밀하게 측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침묵 속에서 오간 몸짓과 표정, 농담 그리고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침묵도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하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행동은 물론 상대방의 말과 일거수일투족을 끊임없이 분석하고 평가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몇 분에 한 번씩 상대방을 자신의 마음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했습니다.
이런 정신적 작업을 두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처리합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긴 세월 동안 준비해왔기 때문입니다.
롭과 줄리아가 사회적 유대와 관련된 판단을 하는 데는 수학 방정식 문제를 풀 때와 같은 과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정신적 작업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무척 수월하게 보였습니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아직까지 두 사람은 자기들이 내린 결론을 말로 조리있게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의 감정은 어떤 의식적인 메시지로 응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선택은 이미 두 사람 마음 속에 자리잡았습니다.
자기가 어떤 선택을 내렸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선택은 이루어졌습니다. 상대방을 향한 욕망이 이미 형성된 것입니다. 상대방을 향한 맹렬한 결단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깨달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합니다.
17세기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가슴은 머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이것은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혼 문제뿐만 아니라 인생의 다른 중요한 일에 있어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아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낯선 의사결정 방식이 아닙니다. 평범한 삶 속에 있는 낭만적인 간주곡일 뿐입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음식을 주문할 것인가부터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인생 전반에 걸쳐 행하는 수많은 판단의 집약된 버전일 뿐입니다.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본래 감정 차원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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